다 똑같은 브이(V) 자 인증샷, 이제 그만 찍고 싶다면?
"큰맘 먹고 먼 곳까지 여행 가서 사진을 수백 장 찍어왔는데, 다 그냥 '나 여기 왔다 감' 수준의 뻔한 증명사진 같아요."
휴가철이 지나고 나면 제 주변 지인들이 여행 사진첩을 보여주며 가장 많이 하는 푸념입니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랜드마크 정중앙에 서서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렌즈를 쳐다봅니다. 저 역시 과거에는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화면 한가운데에 제 얼굴과 뒤쪽 건물을 꽉 차게 욱여넣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갤러리를 열어보면, 그 웅장했던 자연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답답한 인물 사진만 가득 남게 됩니다. 왜 잡지나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여행 사진은 한 편의 영화 포스터 같은데, 내 사진은 촌스러운 인증샷에 머무는 걸까요? 그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화면 안의 빈 공간, 즉 '여백'을 다루는 기술에 있습니다.
인증샷을 망치는 '정중앙병'에서 탈출하기
초보자들이 여행지에서 가장 흔하게 겪는 실수는 피사체(인물이나 랜드마크)를 무조건 화면 정중앙에 크게 배치하려는 습관입니다. 이를 사진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중앙병'이라고 부릅니다.
화면 한가운데에 사람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시선이 사람에게만 꽂혀버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병풍처럼 죽어버립니다. 이때 1편에서 배웠던 '3분할 격자선'을 다시 꺼내야 합니다. 사람이나 중심 건물을 화면 정중앙이 아닌, 왼쪽이나 오른쪽의 세로 격자선(1/3 지점)으로 과감하게 밀어내 보세요. 주인공을 한쪽으로 살짝 비켜 세우는 것만으로도, 나머지 2/3의 넓은 공간에 바다나 산,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담기며 사진에 숨통이 트입니다.
여백의 미를 살리는 핵심: '시선의 방향' 비워두기
주인공을 한쪽으로 밀어냈다면, 이제 남은 여백을 어떻게 배치할지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사진에 스토리를 불어넣는 마법의 공식이 있습니다. 바로 '인물이 바라보는 방향' 또는 '걸어가는 방향' 쪽에 여백을 넉넉하게 두는 것입니다.
만약 사진 속 인물이 오른쪽 바다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다면, 인물은 화면 왼쪽에 배치하고 오른쪽 공간을 넓게 비워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시선이 머무는 곳에 여백을 주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인물과 함께 그 풍경을 감상하는 듯한 묘한 몰입감과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인물이 오른쪽을 보는데 오른쪽 공간을 꽉 막히게 자르고 뒤통수 쪽을 비워두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사진이 굉장히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웅장함을 담아내는 기술: '스케일(크기) 대비' 활용법
광활한 바다나 거대한 산맥을 찍었는데, 막상 사진으로 보면 동네 뒷산처럼 작고 밋밋해 보였던 적 있으신가요? 광활한 풍경의 스케일을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담아내려면 '비교 대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럴 땐 멋진 풍경만 화면에 가득 채우지 말고, 화면 모서리 끝 여백에 사람이나 자동차, 작은 벤치 등을 조그맣게 '점'처럼 배치해 보세요. 거대한 자연의 여백 속에 아주 작게 배치된 피사체는, 그 풍경이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는 최고의 스케일 자(Ruler) 역할을 해줍니다.
날씨가 흐릴 때의 딜레마 (주의사항 및 한계)
여행 사진에서 여백의 80%는 보통 '하늘'이 차지합니다. 파랗고 맑은 하늘이라면 3분할 법칙에 따라 하늘을 화면의 2/3 이상 시원하게 비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여행 내내 날씨가 맑을 수는 없죠.
하늘이 잿빛이거나 비가 와서 우중충한 날, 억지로 하늘을 넓게 담으면 사진 전체가 생기 없고 칙칙해집니다. 이럴 때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스마트폰 렌즈를 아래로 푹 숙여서 안 예쁜 하늘은 화면 상단에서 아슬아슬하게 잘라내고, 대신 발아래에 있는 초록빛 들판이나 예쁜 조약돌, 물웅덩이로 화면의 하단 여백을 꽉 채워보세요. 날씨의 한계를 구도의 센스로 완벽하게 커버하는 실전 기술입니다.
다음번 나들이를 가신다면, 렌즈를 정면으로 보며 브이(V)를 그리는 대신 풍경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화면 가장자리로 밀어내서 한 장 찍어보세요. 여러분의 스마트폰 갤러리에 진짜 '작품'이 탄생할 것입니다.
핵심 요약
인물이나 건물을 정중앙에 두는 '중앙병'을 버리고, 3분할 격자선을 이용해 화면 한쪽으로 피사체를 밀어내자.
인물이 바라보거나 향하는 시선의 방향 쪽에 여백을 넓게 두어야 사진에 답답함이 사라지고 여운이 생긴다.
날씨가 흐려 하늘이 예쁘지 않을 때는, 카메라를 아래로 내려 하늘 여백을 줄이고 바닥의 질감을 살려 앵글을 극복하자.
다음 편 예고: 구도와 여백을 마스터하셨다면, 이제 사진의 진정한 영혼인 '빛'을 다룰 차례입니다. 순광, 역광, 측광 등 빛의 방향만 이해해도 평범한 일상이 영화 스틸컷처럼 변하는 마법을 7편에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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